“커제, LG배 결승 기권… ‘심판 개입 타이밍 논란’”

23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열린 제29회 LG배 조선일보기왕전 결승3번기 최종국에서 커제 9단이 항의하고 있다
23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열린 제29회 LG배 조선일보기왕전 결승3번기 최종국에서 커제 9단이 항의하고 있다

커제 9단, LG배 결승전 최종국에서 기권패

중국의 바둑 기사 커제(28) 9단이 23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열린 제29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결승 3번기 최종국에서 변상일(28) 9단과의 대결 도중 기권을 선언하며 패배를 확정지었다. 이번 기권은 사석 관리 규정을 위반한 데 따른 심판 경고에 반발하면서 발생한 사건으로, 대회 역사에 이례적인 사례로 기록됐다.

사석 관리 규정 위반, 반칙패로 이어져

커제 9단은 지난 22일 열린 결승 2국에서도 동일한 사석 관리 규정을 두 차례 위반하여 82수 만에 반칙패를 당한 바 있다. 이 규정은 지난해 11월 한국기원이 선수들의 사석 관리 소홀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한 것으로, 사석을 반드시 사석 통의 뚜껑에 보관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규정을 위반할 경우 심판은 경고를 선언하고 벌점 2집을 부여한다.

23일 열린 최종국에서도 커제는 규정을 위반했다. 흑을 잡고 대국을 진행하던 커제는 좌변 전투에서 실수를 범해 형세가 기울었고, 이후 우변에서 역전을 노리며 패싸움을 벌이던 중 사석을 사석 통 뚜껑에 보관하지 않고 바둑판 옆에 둠으로써 규정을 다시 한 번 위반했다. 이에 대해 심판은 경고와 함께 벌점 2집을 부여했다.

심판 개입에 대한 반발과 경기 포기

경고를 받은 커제는 심판의 개입에 강한 불만을 표출하며 “이미 사석을 옮겼음에도 심판이 중요한 국면에서 경기에 개입한 것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 상태로는 더 이상 경기를 할 수 없다”며 재경기를 요구했으나, 한국기원은 논의 끝에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커제는 경기를 포기하며 기권패로 처리됐다.

커제의 발언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심판의 판단이 경기 흐름에 과도하게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며, 규정 자체의 모호성과 심판 개입의 적절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한국기원 측은 “규정은 모든 선수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며, 이번 결정도 규정에 따른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커제의 불만과 경기 포기 선언은 국제 바둑계에서 큰 화제를 모으며 다양한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결정적 착각과 돌이킬 수 없는 선택

최종국에서 커제의 경기력에도 아쉬움이 남았다. 좌변 전투에서 흑 47수로 실수를 범하며 순식간에 형세가 기울었고, 이후 우변에서 실낱같은 역전 가능성을 노리던 중 서두르는 기색을 보이며 냉정하지 못한 선택을 이어갔다. 특히 패싸움에서 커제의 판단 실수는 경기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석 관리 규정 위반까지 더해지며 경기는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경기 후 전문가들은 커제의 전략적 접근과 경기 집중력에 대해 다양한 분석을 내놓았다. 일부는 그가 지나치게 서두르며 중요한 국면에서 냉정함을 잃었다고 평가했으며, 또 다른 일부는 규정 위반 상황이 경기 흐름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와 더불어, 커제의 경기력 변화와 심리 상태를 분석하는 기사와 인터뷰가 이어지며 사건의 여파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규정 도입의 배경과 논란

이번 사건으로 문제가 된 사석 관리 규정은 선수들의 사석 관리 소홀을 방지하고자 도입된 조항이다. 특히 국제 대회에서 규정이 통일되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취지로 마련되었으나, 그 적용 과정에서 여러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기원은 “규정 도입 이후 선수들이 사석 관리에 더 주의를 기울이고 있으며, 이는 경기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규정의 세부 내용과 적용 방식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중요한 경기에서 규정 위반이 곧바로 경기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지적하며, 벌점 대신 경고만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완화할 필요성을 제안했다. 반면, 규정을 명확히 지키는 것은 선수들의 기본적인 의무라는 의견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논란은 향후 규정 개선과 심판의 역할에 대한 국제적인 논의를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변상일 9단, 첫 LG배 우승

한편, 변상일 9단은 커제의 기권으로 LG배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변상일은 이번 우승으로 국내외에서 실력을 인정받으며 한국 바둑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그는 이번 대회를 통해 대국 중 압도적인 집중력과 침착함을 보여주며 팬들과 전문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변상일은 “이번 대회는 저에게 큰 의미가 있다. 특히 커제 9단과의 대결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의 이번 우승은 한국 바둑계에도 큰 자극제가 되었으며, 젊은 기사들에게 희망과 동기를 부여했다. 또한 변상일의 경기력과 성취는 한국 바둑이 국제 무대에서 다시 한 번 주목받는 계기를 마련했다.

바둑계에 남긴 여운

커제와 변상일의 대결은 단순한 승패를 넘어 바둑계에 깊은 여운을 남겼다. 경기 도중 발생한 규정 논란은 국제 대회에서의 규정 통일과 심판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선수들의 경기 태도와 심리적 안정성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이번 사건은 바둑 팬들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지만, 동시에 규정과 스포츠맨십에 대한 새로운 논의의 장을 열었다. 앞으로 바둑계가 이러한 논란을 어떻게 해결하고 발전해 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